1. 진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고대 중국의 국가인 진(秦)나라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에 걸쳐 기원전 800여년부터 기원전 206년까지 대략 600년간 지속되었던 나라이다.

 전쟁이 많았던 시기인 춘추 시대와 전국시대를 종결시키고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의 시황제는 문자통일, 화폐와 도량형 통일, 행정구역 및 관리제도 개편 등 수많은 개혁을 실행하였는데 이 혁신적인 시스템들은 오늘날의 중국에서도 여전히 유지 되고 있을 정도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한 혁신 시스템이였다.

 진나라의 중국어 발음인 Qin은 현재 중국의 영어이름인 China의 어원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인데, 그만큼 중국을 대표하는 나라 중 하나라고 보면된다.


 원래 진나라가 있던 지역은 내륙지역으로, 전반적으로 척박한 땅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래 그림을 보면 초기 진나라가 정착했던 지역을 알 수 있다.




(그림 중앙 왼쪽 진하게 칠해진 지역이다. 그림이 작으니 대략적으로만 참고하길 바란다.)







2. 진나라, 법으로 그 기초를 다지다





 중국 서부 내륙지역에 위치해 있던 진나라는 원래 강한 나라가 아니었다. 하지만 기원전 361년 ~ 기원전 338년 효공이 통치하던 시절 효공의 신임을 받았던 상앙이라는 사람에 의해 혁신적인 개혁과 제도를 확립하며 엄청난 발전을 이룬다.


 상앙은 특히 법을 중시하였는데 법을 기반으로 하여 정책들을 진나라에 확립시켰다. 대표적인 정책 하나를 예로 들자면 군공수작제가 있다. 공을 세울경우 신분에 관계없이 나라에서 작위를 주는 법을 만들었는데, 이는 특히 전쟁터에서 엄청난 효과를 발휘했다. 전쟁터에서 적을 죽여 공을 세우면 출세하게 된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하자, 진나라 군대의 전투력은 폭발적이였다. 


 다만 법을 확립시키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미움을 삿다. 기존 기득권층인 귀족들은 공을 세우지 못 할 경우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반발하였고, 왕의 아들인 태자 또한 법의 예외는 아니였다. 태자가 법을 어기자 그의 스승의 코를 베는 형을 집행하였고 태자는 상앙에 대해 증오를 품게 되었다.


 진나라의 지식인이었던 조량은 상앙에게 "사람들의 인심을 잃고 원망을 쌓게 되면 오래가지 못한다"고 하였으나 상앙은 이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상앙을 기용하였던 효공이 죽고 태자가 혜문왕이 된 이후, 상앙은 혜문왕과 원망을 산 귀족들로부터 탄핵을 당하게 되고, 죽임을 당하게 될까 두려워 진나라로부터 도망치지만 자신이 만든법 '아침 닭이 울기전까진 성문을 열수 없다는 법'에 따라 위기에 빠진다. 어쩔 수 없이 여관에 들어가 하룻밤을 보내려 했지만 '여행증이 없는 사람은 받아주면 안된다'는 법에 따라 여관에 머무를 수 없게 된다. 자신이 만든 법에 의해 스스로 위기에 빠진셈이다. 이러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상앙은 진나라에서 도망을 치긴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결국 잡혀 죽게 된다. 혜문왕은 상앙을 죽이긴 했지만 그의 정책은 좋다고 생각하였는지 그대로 사용하게 되는데 이 정책들이 훗날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하게 되는 발판이 된다.






<기원전 260년, 효공이후 3번째 왕인 소양왕 때 진나라의 영토로 추정되는 지역>




<진나라, 효공부터 시황제까지의 연표>


26대 효공 : 재위기간 24년, 진의 군주, 상앙과 함께 법치국가의 기틀을 다짐

27대 혜문왕 : 재위기간 27년, 이때부터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음, 상앙을 죽였던 왕

28대 무왕 : 재위기간 4년

29대 소양왕 : 재위기간 56년, 진나라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재위했던 왕, 진시황제가 통일을 할 수 있는 최종적 기반을 다졌던 왕

30대 효문왕 : 재위기간 1년, 소양왕의 둘째 아들이지만 첫째 아들이 죽는 바람에 태자가되어 왕이 되었다. 하지만 즉위한지 3일만에 의문의 죽임을 당한다. 이 죽음에 대해 소양왕이 오랫동안 재위하는 바람에 효문왕의 나이가 많아서 죽었다는 말도 있고 여불위가 독살을 했다는 얘기도 있다.


31대 장양왕 : 재위기간 3년,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 갔으나 여불위라는 상인의 도움으로 결국엔 왕이 되었다. 하지만 즉위 3년만에 죽게 되는데 이에 대해 정확한 역사자료가 없으나 여불위가 독살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32대 시황제 : 재위기간 37년, 진의 시황제라고 하며 줄여서 진시황제라 한다. 본명은 영정

33대 이세황제 : 재위기간 3년, 본명은 영호해, 진시황의 장남인 영부소가 자결한 후 황제가 된다. 진나라가 이세황제 때문에 망했다는 의견도 있으나 나는 본질적으로는 이세황제와는 상관이 없다고 본다. 물론 아주 출중한 인물이 이세황제가 되었다면 진나라가 멸망 안했을지도 모르겠다.


34대 진왕 : 재위기간 1년, 본명은 영자영, 진나라가 사실상 망하고 잠시동안 허수아비 왕으로 즉위했던 왕









3. 진시황제의 천하통일




 할아버지 효문왕과 아버지 장양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기원전 247년, 13살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영정은 아직 정치에 대해 알지 못했다. 따라서 자신의 아버지를 왕으로 만든 여불위에 의해 사실상 통치가 이루어졌다.


 장양왕의 부인이자 영정의 어머니였던 태후 조희는 원래 여불위가 오래전 데리고 있던 첩이였는데 조나라에 있을 당시 장양왕과 여불위가 연을 맺으면서 장양왕의 처가 된다.


 조희는 원래부터 남자를 밝히는 여자였는데 남편인 장양왕이 죽고나자 여불위를 몰래 불러 정을 나누었는데 여불위는 왕디 된 영정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어머니와 자신의 관계를 눈치 챌까 두려워하여 대책을 마련하게 되는데, 노애라는 정력이 좋은 남자를 환관으로 위장하여 조희의 곁에 두는 것이였다. 이 방법은 꽤 성공적이였으나 한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노애가 조희를 등에 업고 권력을 쌓아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노애와 조희 사이에는 어느새 아들도 둘이나 생겼고, 둘은 왕인 영정이 죽으면 자신의 아들을 왕이 되게 할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기원전 238년 왕인 영정은










4. 진나라의 멸망


5. 우리가 진나라의 멸망으로부터 교훈삼아야 하는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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